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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공혁신의 지렛대, 사회적가치기본법

공공혁신의 지렛대, 사회적가치기본법 

 

흔히 국민경제 3주체로 가계, 기업, 정부를 꼽는다. 가계는 노동력 제공과 소비, 기업은 생산 및 판매를 한다. 정부는 소비와 생산을 벗어나 행정 집행을 하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정부는 사실 가장 큰 소비자이자 생산자이다. 지난해 783개 국가기관, 지자체 등 공공기관이 민간에서 구매한 금액은 41조 1170억원이였다. 시장의 큰 손이다. 어떠한 기준에 따라 구매가 이뤄지느냐에 따라 경제에 미치는 영향이 클 수밖에 없다. 공공조달은 평균적으로 전 세계 국내총생산(GDP)의 15%에 이르고,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에서는 17.4%를 차지한다. 이런 규모를 잘 활용하면 효과적인 정책수단이 되는 것이다.


이 공공조달에 사회적가치를 담자는 움직임이 있다. 문재인 대통령이 국회의원이였던 2014년 6월 발의한 사회적 가치 기본법이 다시 논의되고 있다. 사회적 가치 기본법의 취지는 무엇이며, 어떠한 변화를 만들 수 있을지 살펴봤다.


사회적 영향을 고려한 공공조달, 사회책임조달
공공조달은 공공기관이 제품, 서비스 등을 구매하는 과정이다. 이러한 공공기관의 조달과정 및 구매력을 활용하여 사회적 가치를 창출하는 것이 사회책임 조달이다. 이미 유럽연합 등 선진국은 사회책임 조달을 운영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경제적 가치 창출뿐만 아니라 사회적 가치 창출에도 앞장서는 사회적경제 기업에 대한 우선구매 정책을 통해 어느 정도 사회책임 조달이 이뤄지고 있다.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지난해 공공기관의 사회적기업 제품 구매 실적은 7401억원이다. 많은 금액처럼 보이지만 총 구매액 중 사회적기업 제품 구매액이 차지하는 비율은 전체 구매액 41조의 1.8%에 불과하다. 구매액이 많은 기관은 경기 성남시로 460억원(전체 구매액의 65.1%)으로 나타났다. 공공서비스 영역에서 시가 적극적으로 나서서 사회적기업을 육성한 결과이다. 청사관리 용역업체를 선정할 때 사회적기업에 우선 기회를 제공했다. 대신 지역의 취약계층을 적극 고용하도록 했다. 지난해 9월 ‘시민 중심 공공서비스 지역화 전략포럼’에서 이재명 시장은 “성남시민이 주인이 되어 운영하고 성남시민을 고용하는 사회적경제 기업과 공공구매계약을 맺으면서 주민자치도 내실화되고 있다”고 말했다.


사회적경제 기업의 공공시장 진출을 지원하는 브릿지협동조합의 배성기 이사장은 “공공기관이 사회적 가치를 기반으로 한 사회책임 조달을 한다면 지역사회의 많은 변화를 이끌어낼 수 있다”고 했다. 이를 위해 배 이사장은 다양한 지역사회 이해관계자가 함께 논의하여 주민들에게 직접 도움이 되는 사회적 가치 유형을 지자체 조례에 규정하는 방법을 권한다. 이러한 사회책임 조달 관련 조례는 2012년 서울 성북구를 시작으로 각 지자체, 교육청 등에서 제정되고 있다. 바로 사회적경제 제품 구매촉진 및 판로지원에 관한 조례이다. 이러한 조례에는 사회적경제 기업 제품에 대한 구매촉진계획 수립, 구매실적 관리 등에 대한 의무가 규정되어 있다.

 

최저가 아닌 최적가치 기준의 중요성
사회적경제 제품을 우선 구매해 주는 것은 어떠한 효과가 있을까? 사회적경제는 이윤창출만이 아니라 공동체의 편익을 증가시켜 행복한 지역공동체 구현을 목표로 한다. 또 생산과 분배 과정에서도 지역경제 활성화, 공생 등 사회적 가치를 추구한다. 따라서 사회책임 조달은 현재의 최저가 기준이 아닌 ‘최적가치(best value)’ 기준을 내세우게 된다.


예를 들어 2006년부터 도입된 방과후 학교를 살펴보자. 각 교육청별로 방과후 길라잡이를 통해 다양한 기준으로 운영되던 방과후 학교가 지난해부터는 교육부의 지침에 따라 최저가 입찰 방식을 도입하게 되었다. 교육의 내용과 운영보다 어느 업체가 가장 낮은 가격을 제시할 수 있느냐가 관건이 되었다. 업체들은 가격 경쟁에 나섰다. 그럼 소비자인 학부모들에게 경제적으로 이득이었을까? 그렇지 않다. 줄어든 수익을 보전하기 위해 특정 교재를 사용하도록 강요하거나 강사료 후려치기를 하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최저가 입찰에는 교육의 내용이 무엇인지, 강사들에게 얼마를 지급하는지는 드러나지 않는다.” 4년간 방과후 강사들과 함께 체험교육을 일궈 온 아름누리 아카데미 사회적협동조합 이왕호 이사장의 말이다.


그의 말대로 공공기관에서 최저가 입찰 기준을 내세우게 되면 생산과정에서의 여러 사회적 가치들이 반영되기 어렵다. 방과후 업체를 선택함에 있어서도 최종 가격만이 아니라, 교육의 질적 내용, 커리큘럼이 준비되는 과정, 강사 수익분배 구조 등 전 과정이 중요한 평가기준이 될 수 있다.


공공기관의 구매력이 만드는 지역의 변화
외국에서는 국가가 나서서 이러한 공공기관의 윤리적 소비를 촉진하고 있다. 미국은 2009년 오바마 대통령 취임 직후 백악관 사회혁신청(Office of Social Innovation)을 설치하고 시민사회와의 협력을 통한 사회적 가치 실현과 사회문제 해결을 전폭적으로 지원했다. 영국은 2012년 ‘공공서비스 (사회적 가치)법’을 제정해 정책차원의 사회적 가치 실현을 제도화했다. 국가나 공공기관이 공공서비스를 민간으로부터 구매할 때 관련 계획을 수립하는 단계에서부터 사회적 가치를 고려하도록 규율하고 있다. 이 법에서 사회적 가치는 “위탁 및 조달과정에서 재화와 서비스의 직접 구매와 그에 따른 결과 이상으로 창출되는 공동체를 위한 편익”으로 규정되어 있다. 사회적 가치에 대해 규범적으로 정의하거나 유형들을 열거해서 명확히 하기 보다는 ‘공동체를 위한 편익’이란 표현을 통해 유동적으로 정의하고 있다. 이는 지역별 특수성을 반영해 공동체의 편익이 각기 다르게 합의될 수 있는 점을 고려한 것이다. 예를 들어 영국 버밍엄 시의회에서는 사회적 가치로 인정할 수 있는 공동체 편익으로 지역고용의 창출, 지역제품구매를 통한 지역경제의 진흥, 지역공동체와의 협력 등을 제시했다.


공공서비스법은 공공성 확대, 사회적 가치 확산뿐만 아니라 공공서비스 전달체계의 효율화에도 기여한 것으로 나타났다. 영국사회적기업협회(SEUK) 조사에 따르면 지역 공공기관의 71%가 사회적 가치법 시행을 통해 공공서비스 전달체계가 더욱 효율적으로 개선됐다고 응답했다. 비용절감 효과가 나타났다고 응답한 비율도 52%였다.


문재인 정부의 핵심 철학, 사회적 가치 기본법
새 정부 들어 사회적 가치 관련 법 제정이 논의되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국회의원이였던 2014년 6월 ‘공공기관의 사회적 가치 실현에 관한 기본법’(사회적 가치 기본법)을 발의했다. 이 법안은 다시 지난해 8월 김경수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대표 발의했다. 법안명처럼 공공기관의 사회적 가치 실현에 대한 ‘기본’ 법안이기에 공공기관이 추구해야 할 사회적 가치 정의와 이를 위한 의무를 규정하고 있다. 사회책임 조달의 시행을 위한 기본으로서 시작점이 되는 법안이다. 정부, 지방자치단체, 공기업 등 공공기관이 정책을 수립하고 집행하는 데 ‘사회적 가치’를 우선적으로 고려하도록 했다. 즉 이윤과 효율만이 아니라 인권, 노동권, 안전, 생태, 사회적 약자 배려, 양질의 일자리, 상생협력 등 사람의 가치, 공동체의 가치를 우선토록 했다. 구체적인 내용은 다음과 같다.

 

이를 위해 공공기관의 조달, 개발, 위탁사업 등에서 사회적 가치를 실현하려고 노력하는 사업자에게 많은 인센티브를 제공토록 했다. 더불어 공공기관 평가에도 얼마나 많은 사회적 가치를 실현했는지를 반영하도록 의무화했다.


그렇다면 공공기관에서는 이를 어떻게 구현할 수 있을까? 그 예로 서울시의 ‘서울형 CSR 평가지표’ 도입과정을 살펴볼 수 있다. 공공기관의 구매와 관련해 기업들과 어떠한 기준으로 계약을 체결해야 할지와 관련해 서울시는 2013년 2월 한국표준협회에 ‘기업의 사회적 책임 계약방안 마련을 위한 학술연구용역’을 의뢰해 시에스아르(CSR, 사회책임경영) 도입을 위한 밑거름을 마련했다. 그리고 아이에스오(ISO) 26000, 유엔시지(UNCG) 지표, 지알아이(GRI) 가이드라인 등을 통합해 117개 이행지표 풀을 마련하고 각 분야 전문가와 담당 공무원의 의견을 반영해 최종 확정지었다. 이렇게 해서 서울시의 사회적 가치를 잘 반영할 수 있는 58개의 지표 초안이 마련되었고, 다시금 기업 관계자들의 심층 인터뷰 등을 통해 최종 25개의 지표를 도출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자칫 사회적 가치법이 앞서의 지자체의 사회적경제 기업의 구매촉진 및 판로지원에 관한 조례와 같은 역할로 이해되어서는 안된다. 사회적경제법센터 더함의 양동수 변호사는 “사회적 가치 기본법은 단순히 사회적경제 기업을 위한 법안이 아니다”고 말한다. 공공혁신의 기준을 마련하는 법이라는 것이다. “이 법에는 공공영역에서 공공이 사업을 계획하고 실행하고 평가하는 과정에서 반드시 사회적 가치를 고려하는 방향으로 변화해야 한다는 내용이 담겨있다”고 양 변호사는 강조한다. 따라서 사회적경제, 공공경제, 시장경제의 연결고리에서 이 법을 바라봐야 한다는 것이다.


공공기관의 조달, 개발, 위탁사업 등에서 사회적 가치를 실현하려고 노력하는 사업자에게 많은 인센티브를 제공함으로써 자연스레 사회적경제 기업들이 보다 많은 혜택을 받을 수는 있다. 하지만 사회적경제 기업이 아니더라도 이러한 사회적 가치를 실현하려고 노력하는 사업자 역시 혜택의 대상이 된다. 따라서 양 변호사는 “사회적 가치가 먼저 공공영역에서 구현되면 민간부문에서도 자연스럽게 사회적 가치의 확산이 이루어질 수 있다”고 한다.


사회적 가치 기본법은 공공성에 대한 본격적인 논의의 시작점일 수 있다. 한국은 공공성 측면에서 순위가 가장 낮은 것으로 평가되고, 공공기관의 정책수행 과정에서 사회적 가치에 대한 고려도 초보적인 수준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이 법안을 발의했던 시점은 세월호 참사 두 달 뒤였다. 법안의 제안 배경에는 “세월호 참사는 사람의 생명과 안전보다 이윤을 앞세웠던 우리 사회의 민낯을 직시하게 한다. 이제는 이윤과 효율이 아니라 사람의 가치, 공동체의 가치를 지향하도록 국가 시스템을 바꾸어야 할 때이다”고 되어 있다. 사람의 가치, 공동체의 가치를 중시하는 경영이 공공기관에서 민간으로 확산되면 우리 사회가 한층 안전하고 따뜻해질 것이다.

 

 

기사 출처 : 한겨레

작성일 : 2017/06/23

기자 : 주수원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정책위원

원본 : http://www.hani.co.kr/arti/economy/economy_general/799967.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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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자브릿지협동조합

등록일2017-06-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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